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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동구(대구광역시)/정치
지저동과 동촌동을 제외한 금호강 동부 지역으로 구성된 선거구로 팔공산 일대 공산동, 불로봉무동과 안심이 이 선거구 내에 있다. 전국적으로 지역구를 줄였던 16대 총선 때 동구 단일 선거구였던 적을 제외하면 14대 총선부터 갑/을 선거구로 나뉘어 운영해오고 있다. 현 국회의원은 전직 동구청장 출신인 국민의힘 소속의 강대식이다.
이 지역구 출신인 대표적인 거물로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1]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강석호 의원의 친척인 배우 강신성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있다.[2]
특히 조경태의 사하구 을과 비슷하게 유승민의 입지가 매우 강한 곳으로, 지역구 내에서는 유승민의 지역구 국회의원 역임 전과 후가 달라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동구 모 토박이 말로는 '유승민이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더니 의정활동 보고서' 라는걸 처음으로 구경했다는 말도 나왔을 정도. 실제로 대구신서혁신도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율하지구, 이시아폴리스,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지역구 사업들 중 상당수가 유승민의 공약이었고, 상당수가 성공했다.
유승민의 국정감사, 지역구 관리 등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모습으로 인해 유승민이 국회의원에서 퇴임한 이후 이 지역구 전역에 "유승민 국회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린 곳이다. 19대 대선에서도 유승민의 득표율이 18%에 육박했다.[3]
이 지역구는 신서혁신도시, 율하지구, 이시아폴리스와 같은 신도시가 있어 3040 인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가 이승천이 30% 정도를 얻을 만큼 대구 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그렇지만 유승민의 강력한 입지로 인해 신도시 위주의 선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세가 강하다.
또한 다른 대구 내 지역구와 비교되는 특성으로 대구 공군기지로 인해 중구·남구와 같이 군 기지 문제에 매우 민감한 점[4] 과 대구에서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성군을 제외하면 대구 내에서 몇 없는 농촌 지역이 있다.
무소속 서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현역 의원 박창달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따른 의원직 상실로 치뤄졌다.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고, 이강철에 대항할 후보군을 발굴하지 못한 한나라당은 현역 비례대표 의원 유승민을 사퇴시켜 출마하게 한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였지만 유승민은 험지에서 계속 도전한 이강철을 상대로 치열한 경쟁 끝에 겨우 이겼다. 이강철은 대구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출마한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지만[6] 이후 정계를 떠났다.
이 당시 선거 과정 역시 상술한 선거구 획정 만큼이나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유승민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친박 계열의 미움을 받아서 선거 전 해에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날 뿐만 아니라[9] , 친박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터라 결국, 선거 한 달 전인 2016년 3월 23일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이 때 유승민과 가까운 김희국, 류성걸, 권은희, 조해진이 컷오프당했다.[10] 물론 김상훈, 이혜훈, 유의동 등은 당내 경선에서 이긴 탓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다음날, 해당 선거구에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11] 을 단수 공천했지만[12] , 하필 그 날부터 김무성 대표의 옥새런이 벌어지면서, 그 동안 자잘하게 터지던 당 내 갈등이 이 때부터 대규모로 터지고야 만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 결과로 대구 동구 을을 비롯해 서울 송파구 을과 은평구 을을 무공천함으로서 후보조차 내지 않았다. 하루 만에 입장이 바뀐 이재만이 당사에서 최고위원들을 만나려고 시도했으나 진입을 거부당하고 문고리 잡고 절망적인 모습을 보인 사진이 결정적인 증거.
결국, 유승민이 혼자 출마를 정하면서 무투표 당선이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종 후보 마감 직전에 더불어민주당이 이전에 유승민과 대결했던 이승천을 가까스로 등록함으로서 양자 구도로 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왜 이재만은 무소속으로 가지 않느냐?라고 할 텐데, 사실 유승민이 탈당하고 무소속 등록을 한 시점인 23일을 기해 예비후보들의 당적변경시한이 끝나서 무소속 출마도 불가능하다는 것.
아무튼 지역이 지역[13] 인 만큼, 유승민은 75%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지만, 상술하다시피 박근혜와 친박의 눈엣가시인 탓에 복당까지는 두 달 정도 걸렸다.
여담으로, 이 선거 이후에 유승민에게는 국민 장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는데, 무소속 출마 선언 이후 선거 발대식에 딸 유담과 참여하면서 당시 언론에서 '여신의 얼굴' 등의 보도를 하면서 그 덕에 아버지를 호감 정치인에 인지도 1위를 달리게 한 1등 공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으며(자세한 건 유담 문서 참조.), 유승민을 대신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들어서려고 했지만, 끝끝내 실패했던 이재만은 2년 뒤 지방선거에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나서려다가 권영진에게 밀렸는데, 이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인해 처벌을 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구광역시의회의 동구 지역 일부 시의원들, 동구의회의 일부 구의원들도 개입되어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바람에 2020년 재보궐선거에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무려 4표(지역구 국회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지역구 시의원, 지역구 구의원)나 행사했는데, 공교롭게도 해당 지역들이 모두 유승민의 지역구였다. 물론 당시 유승민은 아래 문서처럼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 자리는 유승민의 최측근인 강대식이 당선되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이승천은 유승민을 비토하는 진박을 의식했는지[14] (...) 선거벽보에 진실한 사람을 내세우기도 했다.
2월 3일 SBS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 한국, 새보수 3파전에서 현역 유승민 의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무소속[22] 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반유승민 표를 후보에 따라 5~8%가량 잠식해서 나올 수 있었던 결과이기에, 유승민 의원과 자유한국당 후보의 승부는 윤창중 후보가 얼마나 자유한국당 표를 빼앗아 올 수 있는가의 승부로 보였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친박계인 도태우, 김규환, 김재수, 김영희 등이 유승민에게 도전한다고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단 동구 을에서는 이들이 윤창중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 주목을 받지는 못 했다.
하지만 2월 8일 유승민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대신, 친유인 강대식 전 동구청장이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경선에 참여했는데, 1차 경선에서 도태우 변호사가 떨어지고, 2차 경선에서 강대식 전직 동구청장이 57.3%의 지지율을 얻어서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과 김영희 전 육군 중령을 꺾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렇게 돼서 윤창중을 비롯한 친박 후보들이 유승민을 낙선시키자면서 출사표를 던진 명분이 무력화되었다.
3월 19일 미래통합당 강대식 예비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여 공천되었다. 이로서 유승민의 빈 자리에 다시 친유계 인물이 도전하게 되었다.[23] 사실상 이승천 후보와 강대식 후보의 맞대결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결과는 강대식 후보가 더블 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이로써 유승민의 공백은 친유계 정치인이 채우게 되었다.
윤창중의 경우에는 선거 운동 중에 강대식을 "유승민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라고 언급하면서 선거운동을 했으나, 단 2%대의 초라한 지지율로 4위를 기록하면서 쓸쓸히 낙선했다. 처음에는 친박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는 듯 했으나 친박 지지자들이 미래통합당으로 결집되었고, 동구 을 자체기 친박 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곳인지라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즉 친박에게도 버림받은 것.
애초에 율하지구 개발, 대구신서혁신도시, 율하테크노밸리, 안심뉴타운, 이시아폴리스, 1호선 하양 연장, 코스트코 대구 혁신도시점 유치,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지역 발전과 대구 공군기지 소음 문제 해결과 대구국제공항[24] ,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현안[25] 등 지역 과제에 대해서 유승민이 해결을 잘한 점과 율하지구, 대구신서혁신도시, 안심뉴타운, 이시아폴리스같은 택지지구에 젊은 인구의 유입 등으로 유승민의 지지율이 높은 상황이었다.
미래통합당 후보인 강대식 전 동구청장이 군 복무를 제외하면 대부분 동구에서 거주했는데다 기반이 있었다는 점, 윤창중이 다른 후보들과 달리 대경권 지역, 인근 창녕군, 합천군, 밀양시와 같은 경남 서북부 출신이 아니라는 점[26][27]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 있다는 점 등 윤창중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무런 공약도 없이 "오직 유승민만 떨어뜨리자"라는 생각으로 왔으니,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동구·군위군 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군위군의 경우 인구는 동구에 비해 훨씬 적기는 하지만 TK에서도 가장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다 보니 이 지역구의 보수세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1. 개요[편집]
지저동과 동촌동을 제외한 금호강 동부 지역으로 구성된 선거구로 팔공산 일대 공산동, 불로봉무동과 안심이 이 선거구 내에 있다. 전국적으로 지역구를 줄였던 16대 총선 때 동구 단일 선거구였던 적을 제외하면 14대 총선부터 갑/을 선거구로 나뉘어 운영해오고 있다. 현 국회의원은 전직 동구청장 출신인 국민의힘 소속의 강대식이다.
이 지역구 출신인 대표적인 거물로는 박준규 전 국회의장[1] ,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인 노재헌,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강석호 의원의 친척인 배우 강신성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있다.[2]
특히 조경태의 사하구 을과 비슷하게 유승민의 입지가 매우 강한 곳으로, 지역구 내에서는 유승민의 지역구 국회의원 역임 전과 후가 달라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동구 모 토박이 말로는 '유승민이란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더니 의정활동 보고서' 라는걸 처음으로 구경했다는 말도 나왔을 정도. 실제로 대구신서혁신도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율하지구, 이시아폴리스,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지역구 사업들 중 상당수가 유승민의 공약이었고, 상당수가 성공했다.
유승민의 국정감사, 지역구 관리 등에서 보여준 긍정적인 모습으로 인해 유승민이 국회의원에서 퇴임한 이후 이 지역구 전역에 "유승민 국회의원님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린 곳이다. 19대 대선에서도 유승민의 득표율이 18%에 육박했다.[3]
이 지역구는 신서혁신도시, 율하지구, 이시아폴리스와 같은 신도시가 있어 3040 인구의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의 지지도가 이승천이 30% 정도를 얻을 만큼 대구 내 다른 지역에 비해 높다. 그렇지만 유승민의 강력한 입지로 인해 신도시 위주의 선거구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세가 강하다.
또한 다른 대구 내 지역구와 비교되는 특성으로 대구 공군기지로 인해 중구·남구와 같이 군 기지 문제에 매우 민감한 점[4] 과 대구에서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달성군을 제외하면 대구 내에서 몇 없는 농촌 지역이 있다.
2. 역대 국회의원 목록 및 역대 선거 결과[편집]
2.1. 동구 (13대)[편집]
2.1.1. 제13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 동구 을 (14~15대)[편집]
2.2.1. 제14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2.2. 1993년 재보궐선거[편집]
무소속 서훈 후보가 당선되었다.
2.2.3.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3. 동구 (16대)[편집]
2.3.1. 제16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4. 동구 을 (17대~현재)[편집]
2.4.1. 제17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4.2. 2005년 하반기 재선거[편집]
현역 의원 박창달의 공직선거법 위반에 따른 의원직 상실로 치뤄졌다.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한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었고, 이강철에 대항할 후보군을 발굴하지 못한 한나라당은 현역 비례대표 의원 유승민을 사퇴시켜 출마하게 한다.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였지만 유승민은 험지에서 계속 도전한 이강철을 상대로 치열한 경쟁 끝에 겨우 이겼다. 이강철은 대구에서 민주당계 정당 소속으로 출마한 후보 중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하였지만[6] 이후 정계를 떠났다.
2.4.3. 제18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18대 총선 때 친박연대도 후보를 낼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당시에는 친박계였던 유승민과 단일화하면서 유승민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될 수 있었다.
2.4.4. 제19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4.5. 제20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0대 총선 이후 원래 동구 을 지역이었던 지저동과 동촌동이 당시 하한선 밑이었던 동구 갑으로 갔다. 문제는 일단 동구 갑 나머지 지역과 지저동, 동촌동의 생활권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7] , 그리고 이렇게 갔음에도 2020년 현재까지 동구 갑과 을의 인구 편차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났다는 점이라 22대 총선 전에 재획정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8]
이 당시 선거 과정 역시 상술한 선거구 획정 만큼이나 순탄치만은 않았는데, 당시, 현역 의원이었던 유승민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과 친박 계열의 미움을 받아서 선거 전 해에 새누리당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날 뿐만 아니라[9] , 친박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터라 결국, 선거 한 달 전인 2016년 3월 23일에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이 때 유승민과 가까운 김희국, 류성걸, 권은희, 조해진이 컷오프당했다.[10] 물론 김상훈, 이혜훈, 유의동 등은 당내 경선에서 이긴 탓에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다.
새누리당은 다음날, 해당 선거구에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재만 전 동구청장[11] 을 단수 공천했지만[12] , 하필 그 날부터 김무성 대표의 옥새런이 벌어지면서, 그 동안 자잘하게 터지던 당 내 갈등이 이 때부터 대규모로 터지고야 만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 결과로 대구 동구 을을 비롯해 서울 송파구 을과 은평구 을을 무공천함으로서 후보조차 내지 않았다. 하루 만에 입장이 바뀐 이재만이 당사에서 최고위원들을 만나려고 시도했으나 진입을 거부당하고 문고리 잡고 절망적인 모습을 보인 사진이 결정적인 증거.
결국, 유승민이 혼자 출마를 정하면서 무투표 당선이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최종 후보 마감 직전에 더불어민주당이 이전에 유승민과 대결했던 이승천을 가까스로 등록함으로서 양자 구도로 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왜 이재만은 무소속으로 가지 않느냐?라고 할 텐데, 사실 유승민이 탈당하고 무소속 등록을 한 시점인 23일을 기해 예비후보들의 당적변경시한이 끝나서 무소속 출마도 불가능하다는 것.
아무튼 지역이 지역[13] 인 만큼, 유승민은 75%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지만, 상술하다시피 박근혜와 친박의 눈엣가시인 탓에 복당까지는 두 달 정도 걸렸다.
여담으로, 이 선거 이후에 유승민에게는 국민 장인이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는데, 무소속 출마 선언 이후 선거 발대식에 딸 유담과 참여하면서 당시 언론에서 '여신의 얼굴' 등의 보도를 하면서 그 덕에 아버지를 호감 정치인에 인지도 1위를 달리게 한 1등 공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으며(자세한 건 유담 문서 참조.), 유승민을 대신해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들어서려고 했지만, 끝끝내 실패했던 이재만은 2년 뒤 지방선거에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나서려다가 권영진에게 밀렸는데, 이 과정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인해 처벌을 받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대구광역시의회의 동구 지역 일부 시의원들, 동구의회의 일부 구의원들도 개입되어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바람에 2020년 재보궐선거에서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무려 4표(지역구 국회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지역구 시의원, 지역구 구의원)나 행사했는데, 공교롭게도 해당 지역들이 모두 유승민의 지역구였다. 물론 당시 유승민은 아래 문서처럼 불출마를 선언했고, 그 자리는 유승민의 최측근인 강대식이 당선되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했던 이승천은 유승민을 비토하는 진박을 의식했는지[14] (...) 선거벽보에 진실한 사람을 내세우기도 했다.
2.4.6.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2월 3일 SBS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 한국, 새보수 3파전에서 현역 유승민 의원이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무소속[22] 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반유승민 표를 후보에 따라 5~8%가량 잠식해서 나올 수 있었던 결과이기에, 유승민 의원과 자유한국당 후보의 승부는 윤창중 후보가 얼마나 자유한국당 표를 빼앗아 올 수 있는가의 승부로 보였다. 그런데 자유한국당 내에서도 친박계인 도태우, 김규환, 김재수, 김영희 등이 유승민에게 도전한다고 출사표를 던진 상황이었다. 단 동구 을에서는 이들이 윤창중에 비해 인지도가 낮아 주목을 받지는 못 했다.
하지만 2월 8일 유승민 의원이 출마하지 않는 대신, 친유인 강대식 전 동구청장이 출마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래서 경선에 참여했는데, 1차 경선에서 도태우 변호사가 떨어지고, 2차 경선에서 강대식 전직 동구청장이 57.3%의 지지율을 얻어서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장관과 김영희 전 육군 중령을 꺾으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진출하게 되었다. 그렇게 돼서 윤창중을 비롯한 친박 후보들이 유승민을 낙선시키자면서 출사표를 던진 명분이 무력화되었다.
3월 19일 미래통합당 강대식 예비후보가 경선에서 승리하여 공천되었다. 이로서 유승민의 빈 자리에 다시 친유계 인물이 도전하게 되었다.[23] 사실상 이승천 후보와 강대식 후보의 맞대결이나 다름없게 되었고, 결과는 강대식 후보가 더블 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이로써 유승민의 공백은 친유계 정치인이 채우게 되었다.
윤창중의 경우에는 선거 운동 중에 강대식을 "유승민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라고 언급하면서 선거운동을 했으나, 단 2%대의 초라한 지지율로 4위를 기록하면서 쓸쓸히 낙선했다. 처음에는 친박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는 듯 했으나 친박 지지자들이 미래통합당으로 결집되었고, 동구 을 자체기 친박 세가 상대적으로 약한 곳인지라 주목도 받지 못하였다. 즉 친박에게도 버림받은 것.
애초에 율하지구 개발, 대구신서혁신도시, 율하테크노밸리, 안심뉴타운, 이시아폴리스, 1호선 하양 연장, 코스트코 대구 혁신도시점 유치, 대구외곽순환고속도로 등 지역 발전과 대구 공군기지 소음 문제 해결과 대구국제공항[24] ,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현안[25] 등 지역 과제에 대해서 유승민이 해결을 잘한 점과 율하지구, 대구신서혁신도시, 안심뉴타운, 이시아폴리스같은 택지지구에 젊은 인구의 유입 등으로 유승민의 지지율이 높은 상황이었다.
미래통합당 후보인 강대식 전 동구청장이 군 복무를 제외하면 대부분 동구에서 거주했는데다 기반이 있었다는 점, 윤창중이 다른 후보들과 달리 대경권 지역, 인근 창녕군, 합천군, 밀양시와 같은 경남 서북부 출신이 아니라는 점[26][27] 청와대 대변인 성추문 의혹사건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박혀 있다는 점 등 윤창중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무런 공약도 없이 "오직 유승민만 떨어뜨리자"라는 생각으로 왔으니,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2.4.7. 제22대 국회의원 선거[편집]
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동구·군위군 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군위군의 경우 인구는 동구에 비해 훨씬 적기는 하지만 TK에서도 가장 보수정당 지지세가 강한 지역이다 보니 이 지역구의 보수세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3. 관련 문서[편집]
[1] 동구 단일 선거구 시절 13대 국회의원, 갑·을 분구 후 14대 국회의원을 지내다 재산공개 파동으로 사퇴했다. 신기하게도 유수호, 유승민 부자와 선거구가 겹친다. 비슷한 케이스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비서관이다. 단 박준규 전 의장은 이들 부자와 경쟁하지는 않았다.[2] 단 노재헌과 이강철은 국회의원은 되지 못했다.[3] 홍준표가 유승민의 불출마 선언 이후에 이 지역구 출마를 포기한 이유도 유승민의 강력한 입지 때문이었다.[4] 역시 선거구 관내에 2개 군부대가 있는 수성구 갑의 경우 군부대로 인한 소음 피해가 적고 시가지와 이격되어 있어 이들 선거구에 비해 민감하지 않다.[5] 2005.9.15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6] 이강철 후보는 기호 1번 열린우리당 소속 후보였는데, 선거 벽보(포스터)는 열린우리당의 상징색인 노란색이 아닌 아예 한나라당의 상징색인 파란색으로 꾸몄고, 열린우리당 마크도 우측 하단에 깨알같이 표기했다. 아무래도 민주당계 정당이 힘 쓰기가 힘든 지역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벽보를 저렇게 만들었을 것이다. 후일담으로, 선거사무소의 간판에도 열린우리당의 로고가 달려 있지 않았는데 정작 후보는 인터뷰 하면서 기자에게 이 사실을 처음 전해듣고 남자답지 못하다며 간판 교체를 지시했다는 일화가 있다. 2005년 이전엔 1990년 4·3 재보궐선거에서 서구 갑에 출마한 꼬마민주당 백승홍 후보의 42.5%가 최대 득표율이었고, 이 기록은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수성구 갑에 출마한 김부겸이 62.3%의 득표율로 당선되면서 경신한다.[7] 신암동, 신천동, 효목동과 동촌권은 다른 생활권이다.[8] 당장 21대 총선 선거인명부 인구를 봐도 동구 갑은 하한선 밑으로 떨어져서 재조정이 불가피하다. 다만 현재 동구 갑 일대에 대대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어떻게 될 진 모른다.[9] 그것도 원내대표에 당선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자세한 건 유승민/정치 경력의 5번 항목 참조.[10] 여기서 김희국 외에는 무소속 출마를 했으나 각각 친박 출신인 정종섭, 정태옥, 엄용수에게 밀려 낙선되었고, 권은희를 제외하면, 21대 총선에 출마해서 다시 원내로 복귀하였다.[11] 조원진이 유승민을 배신자라고 모함하면서, 이재만을 지원했다. 그 때 한 말이 "내가 간 곳에는 진실한 사람만이 있다." 즉 진박 마케팅이었다.[12] 이게 4년 후 21대 총선에서 친이, 친유인 정병국이 황교안과 친박에 의해 컷오프되고, 친박, 친황인 김선교가 공천받은 케이스와 매우 유사하다. 다만 정병국은 불출마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다르다.[13] 당시 유승민에 대한 동정표도 있었고, 보수 지지자들 중 친박이라도 민주당을 지지할 수 없어서 지지한 경우도 있다. 물론 유승민의 지역구 기반이 매우 탄탄하다는 것으로 인해 높은 득표율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20대 총선이 진행되던 기간에 동구 을 선거구에 대구신서혁신도시, 대구경북첨단의료복합단지, 율하지구, 이시아폴리스 등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었을 시기였다. 즉 유승민이 내세운 공약과 지역사업이 진행 중이었던 시기이다.[14] 강기갑의 사례를 보면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15] 법정동 도동 + 평광동 · 검사동(일부), 제11전투비행단 및 대구 공군기지 관사가 있는 동네[16] 법정동 불로동 + 봉무동, 이시아폴리스가 있는 동네[17] 법정동 방촌동(일부) · 신평동 · 부동 · 둔산동, 제11전투비행단 및 대구 공군기지 관사가 있는 동네[18] 법정동 율하동 · 신기동[19] 법정동 용계동 · 율암동 · 상매동 · 매여동[20] 법정동 서호동 · 동호동 · 각산동 · 신서동 · 금강동 · 괴전동 · 대림동 · 사복동 · 숙천동 · 동내동 · 내곡동, 대구혁신도시가 있는 동네[21] 구 달성군 공산면을 관할하며, 12.12 군사반란을 일으킨 전 하나회 소속 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향[22] 이후 자유공화당 합류[23] 여기에 동구 갑 역시 친유인 류성걸이 경선에서 승리하며, 동구 전체는 친유 정치인들이 선거에 나서게 되었다.[24] 대구국제공항의 소재지인 지저동은 원래 관할 선거구가 동구 을이었지만, 20대 총선부터 동구 갑으로 바뀌었다.[25] 이걸 해결하기 위해 유승민은 비인기 상임위인 국방위원회에 재임했다.[26] 홍준표가 경남 출신임에도 수성구 을에 도전할 수 있는 이유가 대구와 붙은 창녕군 출신인데다 영남중학교, 영남고등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27] 나중에 도전한 송영선은 그래도 이 지역구의 안심지구와 같은 생활권인 경산시 와촌면 출신이고 경북여자고등학교, 경북대학교를 나왔다.